[목차]

 

프롤로그 : “그건 참아도 이건 못 참지!”·7

1부 형성
1장 과거제도, 한국 능력주의의 기원?·27
2장 자연화한 능력주의: 사회진화론·43
3장 입신출세주의와 교양물신주의·59

2부 현대 한국
4장 학력주의와 능력주의의 묘한 관계·75
5장 엘리트는 어떻게 ‘괴물’이 됐나·95
6장 한국 능력주의의 특징·123

3부 가치관과 민주주의
7장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물으신다면·143

4부 능력주의 비판
8장 불평등 그리고 이데올로기·199
9장 ‘이상적 능력주의’ 비판·222

5부 대안
10장 길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245

에필로그 : 최후의 능력주의자·298

주·305
참고문헌·326

 

한국의 가계소득 격차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6개국 중 32위로 최하위권이다. 즉, 선진 자본주의 국가 중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 중 하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이 큰 문제'라고 걱정하고 분노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곰곰 듣다 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이 정말 걱정하고 분노하는 대상이 '불평등'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불평등'이 아니라 '불공정'에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 P7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 그 심성의 기저에 도사린 것이 바로 능력주의다. (중략)

능력주의는 왜 나쁜가? 사람들로 하여금 불평등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당연시함으로써 불평등을 재생산한다. 불평등이 심화되면 민주주의도 악화한다. - P8

 

능력주의의 핵심기능은 불평등이라는 사회구조적 모순을 온전희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것이다. 그 결과 불평등으로 가야 할 문제의식은 모두 불공정 논란에 빨려 들어가고 만다. (중략) 많은 사람들이 상속이나 세습은 신분에 따른 차별이며 불공정하고 부정의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능력에 따른 차별은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틀렸다. 둘 다 불공정하고 부정의하다. - P9

 

능력주의가 사회의 철칙으로 맹신되고 있기에 그것은 '혐오놀이'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되기도 했다. 능력주의를 과도하게 내면화한 이들은 자신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혐오의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별로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 P19

 

요컨대 한국 능력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시험을 통한 지대추구와 승자 독식의 제도화라고 할 수 있다. - P133

 

언더도그마를 강변하는 이들 대부분이 극우세력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역차별의 불공정성을 호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차별과 혐오의 정당함을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능력주의는 위계서열화의 논리이고 그 논리의 막장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국, 강자선망-약자혐오다. - P139

 

일반적 의미에서 평등주의는 "너무 많이, 혹은 너무 적게 갖는 건 불공평하다"라는 것이다. 반면 한국형 평등주의는 "나도 부자가 되어야 한다"이다. 자매품으로 "내 새끼도 서울대 가야 한다"와 "나도 MBA 따야 한다" 등이 있다.  즉, 일반적 평등주의는 '사회 전체의 비대칭'을 문제 삼는 데 비해, 한국적 평등주의는 '부자와 나의 비대칭'만 문제 삼는다. - P146

 

특권의 불평등에 분노해 그것을 없애려는 게 아니라 특권에 접근할 기회의 불평등에 분노하며 특권은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이 경향은 계층, 세대, 이념까지도 초월한다. - P162

 

정말 사람들 생각처럼 한국이 '개천용' 사회에서 세습사회로 변했을까? 놀랍게도 많은 실증적 연구들은 그 증거가 희박하다고 지적한다. '개천용' 사회냐 세습사회냐를 따져보는 사회 과학적 개념은 '계층 이동성'이다. 한국 사회의 계층 이도엉에 대한 정밀하고 종합적인 연구논문이 2020년에 발표됐는데 이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계층 이동성은 사람들 생각만큼 떨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최근 출생 코호트로 오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계급적 상관성이 약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최근 출생 코호트로 오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계급적 상관성이 약화됐다'는 말은 쉽게 말해 '세습의 약화'를 의미한다.

이 연구만이 아니라 다수 연구들이 유사한 결과를 보여준다.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한국은 과거에 생각만큼 '개천용' 사회가 아니었고 지금은 생각만큼 세습사회가 아니다. - P264

 

피지개티는 이런 일이 재연되는 것을 막으려면 "최상위 소득을 최하위 소득과 연동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사회에서 정해진 최저임금의 몇 배에 해당하는 최고소득을 설정하고, 그 몇 배수가 넘는 소득에는 모두 100% 세금을 물리는 것이다. 이 정책은 시행 즉시 그 사회 "최상위층과 최하위층의 경제적 운명을 얽어맬" 것이고, 이제 최상위층은 최하위층의 삶에 크나큰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 P270

 

미국의 걸출한 부자 벤처 투자가인 닉 하나우어는 2013년 상원 경제정책 청문회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부자들은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음으로써 부자가 됩니다. 사업해본 사람이면 고용을 늘리는 게 최후의 수단이고, 고객 수요가 늘어나 꼭 필요할 때만 하는 조치임을 누구나 압니다. 부자들은 버는 만큼 수요를 만들지도 않습니다. 저는 중간임금의 1천 배를 벌지만 1천 배만큼 물건을 사진 않습니다. 저희 가족은 차를 세 대 소유하고 있습니다. 3천 대가 아니고요."  한국 역시 재벌이나 슈퍼리치의 고용효과는 크지 않다. 부자들의 힘, 특히 사회적 기여는 턱없이 과장되는 반면 노동자의 사회적 기여는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 P271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모두 성취했을 뿐 아니라, 부패한 현직 대통령을 탄핵시켰을 정도로 정의로운 시민들이, 왜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집단행동에는 잘 나서지 않을까? (중략)

여러 자료를 통해 드러난 한국인의 가치관은 불평등에 대한 강한 선호와 경제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자기표현 가치로 요약된다. 불평등 선호는 주로 형평 원리, 능력주의 원칙, 소득 불평등에 대한 강한 지지로 표현됐고, 낮은 자기표현 가치는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낮은 관용 수준, 생태환경 문제에 대한 낮은 문제의식, 경제 수준에 비해 매우 낮은 성평등 수준 등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자기표현 가치는 아르헨티나, 과테말라, 콜롬비아, 멕시코보다 낮고 같은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도 홍콩, 태국, 중국 아래에 있다. - P278

 

샤이델은 방대한 역사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섬뜩한 진실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인류의 불평등이 급격히 완화된 계기는 크게 네 가지다. 대규모 인구이동을 수반한 전쟁, 유혈혁명, 국가붕괴, 전염병 창궐이 그것이다. 즉, 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끔찍한 재앙이 빈부격차를 줄인다. 미래에 인류가 불평등을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한 샤이델의 전망은 암울하다. 20세기 초와 같은 끔찍한 재앙이 재현될 가능성이 낮고 인구 노령화 등 불평등을 악화시킬 조건들은 더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략) 15년 전만 해도 기세 등등했던 신자유주의 유행도 이제는 크게 꺾인 모양새다. 피케티와 같은 학자들을 필두로 강력한 재분배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확실히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을 과격한 평등화 요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 제기도 활발히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 P281

Posted by 시고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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