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이라는 해답 / 김태호 지음, 창비, 2021
[목차]
프롤로그 과학의 역사, 그리고 사람의 역사
1장 과학의 관념은 필연인가
1. 자연이라는 책을 숫자로 쓰다
2. 시곗바늘은 왜 시계 방향으로 도는가
3. 우주의 척도를 위해 인간의 척도와 결별하다4. 뉴턴의 색, 괴테의 색
5. 어둠은 결핍일까
6. 뜨거움의 본질을 찾아서
7. 영하 273.15도가 말하는 것
8. 인간이 고안한 칼로리, 인간을 지배하다
9. 철도는 시공을 가로지른다
10. 인간을 닮은 기계 앞에서
11. ‘옥도정기’가 ‘아이오딘’ 팅크처가 되기까지
12. 중국의 주기율표는 어떻게 생겼을까
13. 이슬람 역법과 라마단
14. 인간은 언제 새해를 열고자 하는가
15. 딸기에게도 조국이 있는가
16. 가상세계, 그 뿌리는 여전히 현실에
2장 한국 과학의 인물들
1. 과학자의 초상은 우리의 자화상
2. 근대의학의 선구자 김익남
3. ‘과학조선’을 꿈꾸며 날아오른 안창남
4.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를 보고 떠오른 이름, 송기주
5. 우장춘을 ‘씨 없는 수박’에서 해방시키자
6. 한 장의 사진, 세명의 박사, 세갈래의 인생
7. 우리에게는 일본인 스승도 있었다
8. 새 나라의 과학을 일구려던 이들은 왜 흩어졌는가
9. 삼수갑산, 초신 퓨, 그리고 주체섬유
10. 한국 최초의 노벨상 후보를 아십니까
11. 분단되 산하, 새에 실어 보낸 마음
12. 전국민에게 장영실을 알린 과학사학자 전상운
13. 기능올림픽을 빛낸 과학 영웅들
14. 우리는 아직도 과학 영웅을 기다린다
3장 한국 과학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1. 조선에 하늘을 나는 수레가 있었다고?
2. 천하제일의 조선 천문학 『칠정산』
3. 미신은 달력이 아닌 우리 마음속에
4. 서양 선교사를 늦게 만나 일찍 근대화를 하지 못했다는 착각
5. 되찾은 한글, 어떻게 쓸 것인가
6. 외래 기술 연탄, 한국인의 추억이 되다
7. 우리 근현대사의 애환, 리어카
8. 아파트에 김치냉장고를 두고 살기까지
9. 그 많던 포마토는 누가 다 먹었을가
10. 우표 속의 과학자들
11. 4차 산업혁명, 번역 속에서 길을 잃다
12. 이과 감성이 따로 있을까
13. 문·이과의 ‘두 문화’를 넘어서려면
14. 과학을 즐거운 문화로 누릴 수 있을까
4장 과학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1. 황금돼지해를 만들어서라도 바라는 마음
2. 부처님은 1년에 몇번이나 오시나
3. 평양의 시계가 서울보다 30분 더디 갔던 까닭
4. 비타민으로 공습에 대비한다?
5. 일본 의사들의 각기균 찾기 소동
6. 추억의 알약 ‘원기소’에 담긴 역사
7. 동아시아 사람들은 ‘야쿠르트’를 좋아해
8. 원자 궤도 모형은 어떻게 과학의 상징이 되었나
9. 우리는 우주를 어떤 색깔로 보고 있는가
10. 인간은 이미 우주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11. 수소경제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만능열쇠일까
12. 사시사철 누리는 신선함의 이면
13. 상상의 공간, 달의 저편
14. 무한한 자연을 유한한 단위의 순환으로 표현하는 인간
에필로그 한없이 가까워지는 끝없는 여정, 그것이 주는 기쁨
이미지 출처
무지는 편견을 낳고, 편견은 두려움을 낳는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들은 그 두려움을 가리기 위해 남을 혐오하고 공격한다. 만일 다른 문화, 인종, 젠더, 계층에 대해 공연한 거리감과 미움이 생겼다면 그 이유는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한다. 나는 무엇을 모르고, 무엇에 편견을 가지게 되었는가. - P22
한반도 최초의 아파트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일본인 노동자의 집단 숙소로 지은 것이다. 광복 이후로 한정하면 1958년 종암아파트가 건립되었고, 1962년에는 대한주택공사가 마포 일대에 최초의 대단지 아파트를 짓기 시작함으로써 한국인의 주거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아파트에 대한 인식도 노동자의 집단 거주지에서 중산층의 고급 주택으로 바뀌었고, 1980년대의 부동산 투기 열풍 덕분에 아파트는 재산 축적과 증식의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 되었다.
'2019 인구주택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선을 보인 연탄보일러를 활용하면, 방바닥에 온수파이프를 깔고 연탄불로 데운 온수를 방으로 순환시켜 바닥을 데울 수 있었다. 들어가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사실상 온돌과 같은 효과를 내는 셈이었다. 연탄보일러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바람이 불면서 '새마을 보일러'로 이름을 슬그머니 바꾸어 보급되었고, 석유보일러가 연탄을 대체할 때까지 꽤 널리 사용되었다. 이 때문에 1970년대 지은 아파트 중에는 층마다 복도 끝에 각 가구의 연탄아궁이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구조를 한 것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바닥에 온수를 순환시켜 온돌과 같은 효과를 내는 난방 방식을 발명한 것은 외국인이었다. 바로 '낙수장'으로 유명한 현대 건축의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다. 라이트는 일본의 부호 오쿠라 기하치로에게 설계 의뢰를 받고 1914년 겨울 도쿄를 방문했는데, 오쿠라의 조선식 별채(사실은 경복궁의 동궁 건물을 뜯어다 지은 것이다)에서 차를 마시며 온돌 난방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라이트는 눈에 보이는 난방 시설이 없는데도 갑자기 봄이 된 것처럼 따뜻해지는 이 경험에 깊이 감동하고, 이후 자신이 설계하는 건물에 온수파이프를 바닥에 까는 난방 방식을 종종 활용했다. 이 기술이 뒷날 한국에 역수입되어 아파트의 온돌이 된 것이다. - P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