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책머리에
[우리별 1호 30주년 기념 특집] 우리는 별을 쏘았다

1부 우리나라 우주산업의 출발점
_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센터와 우리별

1. 카이스트 학부생들, 영국에 가다
2. 인공위성연구센터가 빚은 첫 인공위성
3. 우리별은 남의 별?
4. 용기를 눌러 담은 우리별 2호
5. 인공위성연구센터의 위기
6. 대기업과 인공위성
7. 우리 고유의 위성, 우리별 3호
8. 100억 원짜리 값비싼 장난감?
9. 새로운 출발

2부 <사이언스>가 주목한 스타트업
_인공위성 산업의 판도를 바꾼 쎄트렉아이

1. 첫 계약
2. 우리나라 최초의 위성 수출
3. 튀르키예에 안겨준 첫 인공위성
4. 효율을 금지하다
5. 가장 위대한 성과는 여러분
6. 전 세계 최단 기록을 세우다

3부 우주 세대를 위한 새로운 길
_기술 기반 스타트업 창업의 모든 것

1. 딜레이의 악순환을 끊다
2. 네가 해라, 대표이사
3. 지구 관측 영상 데이터의 시대
4. 지구의 방사선을 읽다
5. 인공지능을 인공위성에
6. 다시, 새로운 출발

맺음말
[부록] 쎄트렉아이 창업자가 우주 세대에게 건네는 미래

 

 

[본문 중]

 

 쎄트렉아이의 도움으로 위성 개발을 시작한 아랍에미리트는 2021년 화성 탐사선을 무사히 보냈다. 그 뒤 초창기에 한국에서 도와준 덕분에 자신들의 우주 사업이 가능했다고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어떤 것이든 그 일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있다. 처음이기 때문에 모든 게 새롭고,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아무도 하지 않은 일에 도전하여 수많은 시련을 극복하며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는 다른 수사를 덧붙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히 감동적이다.

 

 1992년 8월 10일 오후 8시 8분, 남아메리카 프랑스령 기아나에 위치한 쿠루 우주기지에서 아리안 4 로켓에 실린 대한민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의 발사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시각으로는 8월 11일 오전 8시 8분. 이 장면은 KBS와 MBC를 통해 실시간 중계되고 있었다.

 

 1989년 여름, 과학기술대학 교내 게시판에 공고가 붙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을 개발할 유학생을 모집합니다.'

 공고를 붙인 사람은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과 최순달 교수였다. (P. 27)

 

 유학생 선발은 1986년에 과학기술대학 1기로 입학하여 1989년 1학기를 수료한 조기 졸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이때 뽑힌 박성동은 유학 설명회 당시 최순달 교수가 한 말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공짜로 공부하는 것을 당연하게 누릴 권리라고 생각하면 커다란 오산이다. 너희가 공부하는 데 들어간 비용 중 일부는 시장에서 채소나 생선을 파는 할머니의 전대에서도 나왔음을 명심해라. 이는 너희에게 세상을 좀 더 발전적인 모습으로 바꾸는 데 기여해 달라는 뜻이다. 받은 혜택의 곱절을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책임 의식을 가져라. 나는 우리나라의 위성 기술 개발에 헌신할 친구들을 찾는다."

 박성동과 함께 김성헌, 김형신, 장현석, 최경일이 첫 번째 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P. 31)

 

 현대전자는 1997년 10월 인공위성 조립 공장을 비롯한 새로운 반도체 단지를 대전과학산업단지(현 테크노밸리)에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11월에는 인공위성 조립 공장을 착공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1997년 말 외환 위리고 인해 계획은 진행되지 못했다. 현대전자는 1998년 3월 글로벌스타 사업 포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현금 확보를 위해 보유했던 글로벌스타 주식도 매각했다. 1995년에 글로벌스타가 나스닥에 상장되어 재무적으로는 약 10배의 투자 이익을 얻었지만 인공위성 사업은 더 이상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지분 매각과 무관하게 현대전자는 1998년 10월까지 4000만 달러 규모의 위성 부품을 공급하기로 했던 계약을 원래 계획대로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인공위성연구센터에 파견 나와 있던 현대전자 연구원들은 다를 부서로 전출되었다가 모두 퇴직했고, 일부는 복귀하지 마자 명예퇴직을 하게 되었다. 이때 선종호(현 경희대학교 교수)와 정연황(현 쎄트렉아이 연구 위원)이 인공위성연구센터에 입사하고 이후 쎄트렉아이에까지 합류했다. 1998년 8월 현대전자 임직원 80여 명이 별도의 독립 법인인 KoSPACE를 설립하여 위성 사업은 그나마 한동안 명맥을 유지했지만, 이 회사는 2005년 LS전선에 인수되었다가 2015년에 청산되었다. (P. 59)

 

 삼성과 현대 같은 대기업의 우주 사업 진출 시도는 1997년 외환 위기가 아니었다면 분명히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생태계를 조성했을지 모른다. 정말 아쉬운 일이다.

 현대 정몽헌 회장이 세상을 떠나고 5년 후인 2008년 8월, 카이스트는 우주 분야 연구에 크게 공헌한 정몽헌 회장과 최순달 교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97년에 건립된 인공위성연구센터 연구동에서 '정몽헌 우리 별연구동' 및 '최순달 세미나실' 명명식을 개최했다. 이 행사에는 정 회장의 부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당시 대덕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던 최순달 교수 등이 참석했다. (P. 60)

 

 쎄트렉아이가 싱가포르와 20년 넘게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점은 "약속보다 더 많이 제공한다(Less promise, more delivery)"는 고객에 대한 자세 때문이라 생각한다. (P. 93)

 

 2006년  4월에 20대 중반이었던 연구원 4명이 대전으로 와서 시작된 두바이의 위성 프로젝트는 2015년을 기점으로 모든 개발 활동이 두바이로 이전되었다. 그리고 무함마드 빈 라시드 우주센터는 이제 300명 이상의 연구원을 보유한 대표적인 위성 개발 기관으로 성장했다. 알 만수리는  2014년까지 이 우주센터의 소장으로 재직했고, 2012년부터 아랍에미리트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2022년 현재 개인적으로 문명교차로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무함마드 빈 라시드 우주센터가 2020년 7월에 발사한 화성 탐사선 아말(희망이라는 뜻의 아랍어)은 2021년 2월에 화성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이로써 아랍에미리트는 미국, 러시아, 유럽, 인도에 이어 다섯 번째 화성 궤도 진입국이 되었다. 책임자인 옴란 샤라프는 이 프로젝트 성공의 배경 중 하나로 "2000년대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DubaiSat-1, 2를 발사하면서 많은 지식을 전수받은 것"을 꼽았다.

 쎄트렉아이는 앞으로도 몇 년 더 두바이가 후속 프로그램에서 요청하는 분야를 지원할 예정이다. 2021년 말까지 쎄트렉아이가 외국으로부터 수주한 전체 사업 규모에서 두바이는 40퍼센트를 차지한다. (P. 128-129)

 

 2014년에 개봉된 <우리별 1호와 얼룩소>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이 작품은 스페인에서 열린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최우수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수명을 다한 우리별 1호는 대기권으로 진입하여 소멸할 처지였지만, 신비한 힘이 작용해서 소녀의 모습으로 탄생하게 해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다.

 설계 수명이 5년이었던 우리별 1호는 12년이 지난 2004년 말까지 교신이 가능했다. 지금은 작동하지 않지만 여전히 그 궤도를 돌고 있다. 한때 우리별 1호를 회수해 오는 계획이 잠시 논의된 적이 있었다. 현재 우리의 기술로는 어렵지만 도저히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언젠가 기술 수준이 충분히 올라가고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우리별 1호를 회수할 날이 오기를 바란다. 우리나라의 우주 시대를 처음 열어준 우리별 1호가 영원히 우주 쓰레기로 남아 있지는 않았으면 한다. (P. 182)

 

● 1989년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센터 학생 5명이 우리별 위성 개발을 시작하다.

● 1992년 8월 11일 우리나라 우주 시대의 출발점, '첫 인공위성' 우리별 1호 발사.

● 1993년~1999년 최단시간, 독자 기술력 확보로 전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은 우리별 2호, 3호 발사.

● 1999년 12월 《사이언스》가 주목한 '국내 최초' 우주 기업! 우리별 개발 연구자들이 모여 인공위성 딥테크 스타트업, 쎄트렉아이를 창업하다.

● 2008년 우주산업 분야에서 '국내 최초'로 코스닥 상장.

● 2009년 해상도 2.5미터 인공위성으로 '국내 최초' 위성 수출의 기록을 남기다.

● 2013년 '세계 최초' 1미터급 소형위성 발사.

● 2014년 자회사 SIIS 설립, 아리랑 위성 영상을 전 세계의 판매하기 시작하다.

● 2019년 자회사 SIA 설립, 위성 영상에 머신러닝,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다.

● 2021년 초 한화그룹이 유상증자를 통해 최대 주주가 되다.

 

쎄트렉아이는 창업 멤버 25명으로 출발해 400명 이상의 규모로 성장했고(2022년 초 기준), 2024년에는 군집 운용 초소형위성 체계 Space-M을 우주로 등판시킬 예정이다. 설립 이후 3억 달러 이상 누적 해외 수주액을 기록했으며, 사실상 우리나라 인공위성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정한 분야의 개척 시기를 다루는 이야기는 언제 봐도 항상 흥미롭다.

Posted by 시고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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